나는 지방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고등학교에 거쳐 재수를 했지만 여전히 공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공부와 좋은 대학 보다는 다른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나름은 값지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효율은 좋지는 못했다.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군대를 가서 나는 07학번이자 07군번이다. 오히려 09학번과 시작을 함께했다. 두번의 학년 대표, 동아리 회장, 나쁘지 않은 학점, 여러 많은 활동등을 하면서 마냥 대기업을 목표로 한 것 같다. 당시는 건설 경기가 매우 나쁜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과 굉장히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조금 생각이 있다고 보이는 사람들은 조선이나 플랜트로 빠지는 추세였으나 오히려 플랜트는 건축보다 토목, 기계, 전기 전공자들을 선호했다. 여튼 나는 그런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경기는 좋지 않았으나 기사 자격증만 있다면 그래도 종합건설회사는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큰 회사이지만 금**택 회사의 경우 교수님 추천으로 왠만하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한 학년에 50명이었는데, 우리 학번에서 겨우 겨우 어떻게 학점 채워가며 졸업하는 친구도 건설회사를 가고 그래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건설회사 가는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1년 어학연수, 그리고 몇 개월의 미국 인턴 생활을 계기로 나는 어떻게 든 외국계 회사를 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계 회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외국계 회사라는 환상이 큰 부분도 작용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외국계라는 정의 자체도 참 모호하다. 대부분은 외국계라고 하면 구*코리아, 애*코리아, 페**북코리아 같은 회사를 떠올리기 쉽다. 저런 회사는 정말 단순 노동자를 뽑거나 정말 학력이 좋은 엘리트를 뽑을 가능성이 많다. 더군다나 건설 직종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인 사이트에서 독일계 기업을 발견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때 이후로는 해당 사이트에 공고를 올리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만남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이력서 제출과 함께하였던 해당 지원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정확히는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그러고 1년간 졸업 유예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한다. 정확히는 기사 공부와 다른 자격증 공부를 했다. 해당 회사는 거푸집 회사였는데 기사 공부를 하면서 거푸집 관련 공부를 하면 자꾸 그 회사가 떠올랐다. 너무 가고 싶었다. 난 일찍 필기는 붙은 상태였는데 추석 전에 미친척하고 해당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낸다. 너무 가고 싶은 회사인데 공고가 또 안 떠서 언제쯤 뜨는 지 알고 싶다고 말이다. 추석이 지나고 연락이 왔다. 계속해서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고 다음 채용이 곧 있다고 말이다.
그 때 나는 아이**동서라는 회사에 특별 채용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몇 주 간격으로 두 회사의 면접을 다 봤고 솔직히 면접의 분위기로는 건설회사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기사만 붙으면 바로 채용하겠으니 오라고 전화가 왔고 심지어 면접 때 건설본부장님께서 자기는 이런 말 하는 사람 아닌데 내가 너무 맘에 든다고 했다. 자기한테 이런 말 나오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사실 면접도 절반이상은 그분의 유쾌하게 장난 치시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에 반면 독일계회사는 면접을 한 13명 정도 본 것 같고 이후에 들어보니 여자 1, 남자 2 뽑을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서류 통과를 한 사람이 여자 1명이었고 나머진 남자였다. 나의 동기는 사실상 서류 합격이 왠만하면 합격이었다. 면접은 필기면접, 캐드 면접, 대면 면접이었다. 순서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대면 면접 후 필기 면접이었다. 사장님이 면접을 봤는데 난 분명히 설계로 지원을 했는데 자꾸 영업적인 질문을 하셨다. 선배 후배는 몇 학번부터 몇 학번까지 알고 있는지, 영업에 대한 생각은 있는지 등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하도 서류에서 떨어지다 보니 영업 위주로 지원을 했는데, 자꾸 물어봐서 어쩔 수 없이 영업에 대해서 생각이 있고 이 회사 외에는 영업을 위주로 지원했다라고 했다. 그러니 사장님이 갑자기 웃으시면서 면접을 종료했다. 이 사장님도 특이하게도 이런 말을 했다. 시험만 잘치면 같이 일해보자라고…
필기 시험은 영어 시험, 구조 시험, 인적성 시험이었는데 미국 인턴 이후 영어로 내리막이었고 구조도 시험용 공부만 했던 터라 자신이 없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이후 알아보니 내가 1등 여자 동기가 2등이었다. 나 빼고 대부분 서울 4년제로 알고 있었는데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난 시험은 드럽게 못친다.
필기를 치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여기서 ***이 누구냐며 나를 찾는다. 나는 손을 들었고, 시험 다끝나면 아랫층에서 자기를 찾아오라고 한다. 그래서 마무리하고 내려갔더니 다시 면접이 시작 되었다. 사장님은 나를 영업으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나를 면접 보는 사람은 먼가 시큰둥 했고 별로 뽑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형식적인 면접이 끝난 뒤 그 이사님과 사장님 방으로 갔고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시험 잘쳤냐길래 내가 웃었더니 사장님이 왜 웃냐고 정색했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이 양반이 이런 사람인 것을…
사장님이 이사님에게 나에 대해 어떤 지 물었다.
이사님은 돌려서 말했는데 내가 이해하기론
이미 다 정해놓고 나한테 뭐라하길 바라냐 그냥 뽑아라…
였다. 알고 보니 회사에 영업직도 뽑고 있었고 그 이사님 팀에 직원이 될 예정이었다.
허나 예전에 다녔다가 이직한 직원을 데려오고 싶어서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3개월만 경험 차원에서 설계를 하고 이후 영업으로 넘어가라는 사장님에 말과 함께 나는 독일계 회사 Design Engineer가 되었다. 정말 웃기지만 이때가 나의 이 회사에서 커리어 하이인 것 같다.
나는 기사를 따면 할아버지의 성화에 종합건설회사에 가야 될 것 같아 끝까지 실기를 치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떄도 전혀 몰랐는데,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건설회사 사장을 하셨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토목회사를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 내가 볼땐 골조회사나 나까마 소장이었지 않나 싶다... 우리집안이 그정도는 아니거든....ㅋ, 돌아가신 분이라 물어보기도 그렇고...)
지금의 기사자격증,, 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1급면허 따야된다,,, 1급면허 따야된다,,, 그러셨다.
하지만 몇 년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훈아... 니는 내가 믿는다... 였다.
하... 있을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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