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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areer Path

나는 이상한 신입사원 이었다.

첫 직장에서 나는 이상한 신입사원 이었다. 기사에 신입이었지만 외모는 과장같은 외모였고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직원이었다.

 

엄청 바쁘지만 그렇게 인정을 많이 받지 못하는 팀에 배정 되었다. 신입 일때 우리팀은 너무 바빴다. 영업과 설계가 한 팀이었고, 난 분명히 설계였지만 영업인 이사님이 나를 교육 시키는 일이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팀 팀장님도 어린 나이에 팀장을 했고 집에서 항상 늦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엄마였다. 

 

이 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 일화를 들어보면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전화 받기 였다. 

 

유관 부서와의 전화 업무, 업체에서의 통화 등이 많은 자리였다. 정말 많은 전화가 오는데 정말 웃기게도 지 전화 아니면 전화를 절대로 땡겨 받지 않는다. 나는 집중하면 다른 소리를 잘 못듣는 편이고 어리버리 하다가 전화를 못 땡겨 받는 일이 많았다. 암튼 이런 일로 갈굼을 받다보니 노이로제가 걸려서 옆에서 다른 사람한테 전화 토스 하는 것까지도 땡겨 받는 일까지 생겨버렸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우리 팀은 너무나 바빴고 나는 어쨋든 무언가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탕비실 청소, 얼음 교체, 프린트 용지, 야식비 등 일단 잡일만 한 3~4개월은 한 것 같다. 제대로된 설계 업무는 체감상 반년이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요즘은 보면 오자마자 몇 주만에 프로젝트를 부여받아서 일하는 걸로 아는데 암튼 난 갈수록 천덕꾸리거 신세였다. 프로젝트 때문에 비행기로 부산 출장가는 이사님을 차로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이 가장 값진 일중 하나일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도 결국에 모종의 사건으로 이사님을 들이 받아서 서로 대면할때 까지도 이사님 따까리라는 별명이 나를 따라 다녔다.

 

나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사우디 프로젝트였다. 앞에 언급한 부산 프로젝트의 연계 프로젝트로 우리 팀은 사우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해외 프로젝트의 비중이 컸고 S모 물산을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타 팀 대비해도 역대급 임팩트의 프로젝트였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남자라는 이유였다. 처음 우리팀에 배정 받을 때는 설계는 나를 포함하여 여 2, 남 2 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때는 여 5, 남 1 팀이 되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사우디를 방문 해야되는 상황이었고 어줍잖이 영어를 한다는 소문과 남자라는 이유가 결국 내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 이유였다. 거지같은 타이밍으로 진급이 어려웠던 내가 한방에 진급을 했고, 월급도 대략 25프로 정도 인상을 하게 되었다. 파급적이었지만 그만큼 개 고생도 했고 내 설계 커리어상 5~6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끌어 나갔던 내가 당시에는 거의 단일 프로젝트로 1년을 했던 것 같다. 회사 매출이 300억 초반이었는데 본 프로젝트가 150억 이었다. 물론 이후 자재 수급의 문제, 사우디 지사와의 문제 등으로 60억만 수주했다.

 

사우디에서도 정말 어마어마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 중 여기서 나는 3d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원청사인 포*코와 하도급사인 사우디 로컬 기업 직원들과 영어로 대화를 해야 되었고 2d는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그간의 회사 내 인식은 3d로 그리면 사장님한테 쌍욕을 먹는 분위기 였다.

 

그 때 골조를 이해하고자, 제품을 설명하고자 조금씩 3d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게임 보다는 건물 모델링에 꽂혔다. 이건 절대로 전공자가 모델링 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우디 이후 조금씩 만졌던 여러 3d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가 언리얼 엔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결국 대차게 망해버린 프로젝트인 사우디 프로젝트를 틈틈히 밤새가며 모델링도 하고 주먹구구식으로 게임으로 만들어 보았다. 지금 보면 많이 엉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링크드인에 올리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본사에서 연락을 받아서 BIM Team member가 된다. 사우디가 망해서 자재 수급 및 타 지사로 되 파는 업무를 위해 사우디를 방문했다 돌아올 당시 새롭게 부임한 영국인 사장님이 아무튼 나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내가 망해버린 프로젝트를 수습하러 현장으로 가서 어떻게든 해결하는 모습이 본인의 전임 사장의 끄나풀로 보였나보다. 암튼 나는 이 놈의 회사에서 호구 짓은 엄청 했다. 시간적 순서는 다르지만 나 말고 다른 설계 직원 분을 BIM 담당자로 만들었고 난 본사에서 그 이후 BIM Team Member로 임명해서 참 껄끄러웠다.

 

정말 웃긴 사실인데 영국 사장님 다음으로 사장님이 된 분이 나에게 어떠한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했다. 내가 BIM Member가 되는 과정에서 본사와 사장님과 나랑 미팅을 한 것을 계기로 사장님은 나에게 그 어떤 IT 적인 부분을 봤던 것 같다. 프로그램 개발과 BIM은 너무나 다른 영역인데 축구선수를 보고 공가지고 운동하니까 너 농구도 잘하겠네 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이 사장님은 참 운이 좋다. 해당 프로그램 개발은 내가 술을 먹을 때 마다 선배들 붙잡고 당연히 해야되는 것 중에 하나로 자주 말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코딩에 대해서 흥미도 있고 GW BASIC 4급에 빛나는 나였다.

 

개발은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걸렸고 사실 2차 확장은 하기도 전에 내가 퇴사를 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2차 확장을 다 마무리 하고 그만 두고 싶었지만 말도 안되는 예산을 지원해 줬고, 1차 론칭에 성공으로 인해 벌때같은 요청들 때문이었다. 이미 해당 프로그램은 여기 저기의 추가 요청으로 인해 누더기가 되어있는 상태라 더는 용납 할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의 요는 아날로그식 업무 절차를 디지털식 업무 절차로 변환 하는 거였다. 내가 원하는게 100이었다면 직원들의 인식 및 능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50 수준으로 개발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예산의 문제도 한 몫 했다. 앞에서 사우디 프로젝트도 진짜 비자 발급 부터 모든 업무를 손수 내가 했고 (비자 발급만 6번 정도 함) FLOW CHART를 시작으로 해당 업무 담당자와의 미팅, 개발자 미팅 및 선정, 프로젝트 진행시 마다 모든 유관 부서와의 합의 등의 업무를 진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는 내 본연의 업무는 계속 하고 있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사이에 나는 설계에서 영업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설계팀이든 영업팀이는 내가 이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해주거나 양해를 해주는건 눈꼽만큼도 없었다. 나는 업무시간에 일을 했고 야근을 통해서 개발 기획 업무를 진행했다. 개발자와 술도 먹고 밤늦은 통화를 하고 진짜 울며 겨자먹기로 겨우 만들었다. 정말 도와주는 사람은 없으면서 태클은 무지하게 받았다. 이런걸 왜하니, 니가 왜하니, 이거 개발하는데 니가 직접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니가 바쁘니 등등 진짜 재미있는 사실은 3~4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걸 탄력 받아 모 부서장이 기획하여 개발업무를 진행했으나 대차게 말아먹었다. 솔직히 그것도 내가 했으면 잘할 자신은 있는데 더이상 호구 취급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 업무를 했고 가장 많은 경험과 업무의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손목 터널 증후군 등을 포함하여 온몸이 안아픈 곳이 없고 심지어 사우디에서는 한번 떨어져서 다친 발목이 아직도 안좋다. 현장에서 노가다도 해봤고, 샘플 시공을 위해 직접 거푸집 설치 테스트도 했다. 일하다 쓰러져 구급차에도 실려가 봤고 나보다 나이 많은 영감들이랑 소리치며 싸움도 해봤다ㅎㅎ 많이도 울었고 그만큼 애정을 담은 회사이기는 했다. 그리고 이때 남들보다 진짜 딱 2배 만큼 더 일했고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오기는 했다.

 

내가 퇴사를 하게 된 계기는 크게는 두 가지 였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 만큼 회사는 절대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혜택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로 갔다. 여기서는 어떻게 보면 업무 외적인 부분만 언급했지만 영업으로서도 맨땅에 해딩에서 수주도 제법 했고 사람들이 코웃음치며 무시했던 건축에 쓰는 공법을 LNG에 적용하기도 했다. (나 퇴사 후 결국 수주해서 회사는 잘먹고 잘산다) 나는 월급도 100명 중 80~90등이었고 사실 신입사원 다음이었다. 근데 그들은 인센티브를 받고 난 못받았다. 그러니 내가 꼴등이다.

 

두번째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 회사는 어마어마한 근속연수를 자랑했고, 94년 설립하였는데 아직도 당시부터 다닌 직원들이 있다. 10년차는 중간급도 안되는 위치이다. 여튼 나는 10년이 지나도 계속 지금과 같은 일을 해야 될 거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으로 때워서 올라가고 싶지 않다. 경력의 황혼기에 CEO가 된다면 그때도 경험으로 잘하긴 하겠지만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를 봤을때 결코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회사 즉 스타트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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